이달의 소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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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
- 명칭
- 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朝鮮國立警察顧問)(1946~48년)
- 내용
- 미군정기(1946~1948)에 미군정청 경무부 소속 조선국립경찰 고문이 착용한 배지이다.
이번에 소개할 유물은 미군정기(1946~1948)에 미군정청 경무부 소속 조선국립경찰 고문이 착용한 배지입니다. 배지의 가운데에는 바탕에 파란색의 칠보 장식이 되어 있으며 금속재질로 광선모양이 빙 둘러졌습니다. 앞면 중앙에 "朝鮮警察(조선경찰)", "警務部(경무부)" 가 새겨진 미군정기 경찰 배지가 배치되고 그 양옆에 세로쓰기로 "朝鮮國立", "警察顧問"이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칠보 장식이 된 원을 빙 둘러 "ADVISOR", "KOREAN NATIONAL POLICE" 문구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단 가장자리에는 연번으로 보이는 ‘14’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에 사용된 칠보는 금속 위에 유약을 얹은 후 섭씨 600~900℃정도의 고온에 녹여 금속에 유약을 융착시켜 표면에 다양한 색상을 입히는 기법입니다. 칠보는 금속의 산화를 막아 제품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금속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칠보는 조선시대까지 파란 혹은 파랑이라고 불렀으며 비잔틴제국을 이르는 폴린(Polin=the city)이라는 말을 중국이 ‘법랑’이라고 표기하고 중국식으로 ‘화란’이라고 발음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7-8세기경 제작된 경주 분황사탑에서 발견된 은제 침통에서 녹색 칠보공예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중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다양한 장신구에 칠보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 안에 새겨진 태극 문양과 꽃문양은 미군정기 경찰 배지에서도 볼 수 있는 상징으로 2월에 소개된 적이 있는 유물이었습니다. 미군정기 경찰배지와 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를 비교해보면 미군정기 경찰배지는 맨 아래 지역명이 쓰여 있다면 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는 警務部(경무부)라고 쓰여 있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국립경찰고문 배지 안에 새겨진 꽃문양이 좀 더 입체적이며, 태극문양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배지와 관련된 사진을 살펴보면 미군정기 경찰의 오른쪽 가슴에 패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군정기 경찰 1947년 11월 2일에 찍힌 영천 경찰서 청사 준공식이라고 쓰여진 건물 정문 양 옆에 미군정기 배지가 도식으로 그려져 있는걸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해방후 미군정청은 1945년 10월 21일에 경무국을 창설하였습니다. 경찰 지령 Organization, Bureau of Police with Duties of Staff Officers에 따르면 초기 경찰 조직 개편은 브랜스타터(A.E.Brandstatter)대령이 계획하고 작성하여, 1945년 11월 26일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각 국(Bureau)마다 임무와 책임이 명확하게 규정되었습니다. 각 부서의 책임자는 경찰 및 소방 업무를 담당했으며, 행정관리와 특별연구단, 그 밑에 7개 부서(경무, 소방, 수사, 인사, 통신, 재정 및 보급)가 있었습니다.
1946년 4월 15일에는 7개 부서를 4개 부서로 축소하는 두 번째 조직 개편이 있었습니다. 1946년 3월 29일 법령 제64호 「조선정부 각부서의 명칭」에서 경무국을 경무부로 명칭을 바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1946년 10월 23일 군정법령 제114호와 관련하여 도지사를 의원으로 하는 관구경찰평의회가 구성되고 구성원으로 미국인 경찰고문이 임명되게 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그와 관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경찰부의 폐지와 관련하여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在朝鮮美國陸軍司令部) 군정청(軍政廳) 법령 제114호가 1946년 10월 23일 공포되어 11월 2일 시행되었습니다.
군정청법령 제114호 도기구의 개혁「제5조 도경찰부의 폐지」에 따르면
도경찰부(道警察部)는 이를 폐지함. 도경찰부의 임무(任務), 직능(職能), 문서(文書), 재산(財産)과 직원(職員)은 도경찰부와 동등의 권한이 유(有)한 경무부소속(警務部所屬) 각관구경찰청에 이관함. 경찰청장은 법령을 집행하야 도내의 질서를 유지하며 도지사와 상호 협력하야 도내 인민의 안녕과 질서를 확보할 책임이 유(有)함.
이 법령으로 각 도의 기구가 재조정되었으며 기존 일제강점기 행정체계를 미군정 체제에 맞게 정비했습니다. 이 법령을 통해 미군정은 일제강점기 남은 조직을 축소하거나 재편하여 효율성을 높이려 했습니다.
이후 1947년 5월 29일 서울신문,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경무부장 조병옥은 1947년 5월 26일 각 관구에 경찰평의회를 조직할 것을 통첩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각 관구 경찰청장은 지방장관으로서부터 치안상 필요한 의견과 지휘를 받을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관구 도에는 도지사를 의장으로 경찰평의회를 설치하고 각 구부군(區府郡)에는 군수 또는 부윤을 의장으로 區경찰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경찰평의회 역할은 중앙에 민정장관을 수반으로 하는 경찰위원회의 하부조직으로 설치되어 경찰기강과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야기되는 제반 불상사에 대처하여 지방민심을 순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미국인 경찰고문이 했던 업무에 대해 나와 있는 1947년 1월 18일 경향신문에 의하면 초만원으로 인한 형무소와 관련하여 사건처리의 지연과 결함이 없도록 조사하는 업무 등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군정기 자료 주한미군사 기록에(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 HUSAFIK) 의하면 조선경무부에 총 63명의 미국인 고문이 있었으며, 그중 39명은 군인이고, 24명은 민간인이었습니다. 평균적으로 20명의 고문이 동시에 근무하고 있었고, 가장 많았을 때는 40명까지 근무했다고 합니다.
경무부장 고문 매글린(W H Maglin)이 경찰 공안담당관에게 보낸 서한에는 미국인 고문들은 모두 미국에서 경찰 복무 경험이 있으며, 미국의 각기 다른 주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1948년 9월 5일 경무부장 고문 에릭슨(H. E. Erickson)이 전체 경찰청 고문(All Division Police Advisors)에게 보낸 서한에 의하면 미국인 고문의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의 경찰의 활동 및 계획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거나, 비민주적이며, 주한미군정(USAMGIK)혹은 조선인들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할 경우 그것을 승인하지 않을 권한이 있었습니다.
1948년 9월에는 수도경찰청을 제외한 여러 부서에서 미국인 경찰 고문들이 철수했습니다. 군인 한명과 민간인 3명이 11월 1일까지 경무부에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경무부장 고문 밀라드 쇼(Millars Shaw), 경찰국(Uniform Police Bureau)고문 제임스 버레인(James H, Berrean), 그리고 수사국(Detective Bureau) 고문 레스터 쵸페닝(Lester Chorpening)등 으로, 이들 모두 경무부 본부에서 내내 근무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근무했던 로이 쿨리(roy Cooley)는 수도경찰청에 발령받았습니다. 이 기간에 그들의 업무는 대부분 다른 정부기구와 연락을 취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세히 보기오늘 소개한 조선국립경찰고문배지는 미군정기의 경찰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 유물을 통해 경무국에서 경무부로의 변천 과정과 함께 중앙집권적인 경찰조직 개편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