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장유물

  • 이달의 소장유물
  •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경찰

    2026년, 새해 잘 보내고 계신가요?
    2026년은 백범 김구 선생의 탄신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뜻깊은 해를 맞아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임시정부 경무국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기리며 이번 글에서는 임시정부 경찰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 경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광복이라는 격동의 시간을 거치며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 경찰은 독립된 나라를 꿈꾸며 치안과 질서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임시정부 경찰 유물을 통해 그들의 활동과 의미를 살펴보고 대한민국 경찰 역사의 출발점을 다시금 조명하고자 합니다.

    1919년 3월 1일,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 저항하며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났던 만세 시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나라를 되찾기 위한 외교활동과 함께 정부로서의 체계를 갖추는 데 힘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요인 보호, 밀정 색출, 동포 사회의 치안을 담당할 조직으로 내무부 산하에 경무국을 설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경찰청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임시정부 조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임시정부 계통표입니다. 내무부 산하에 비서국(秘書局), 지방국(地方局)과 함께 경무국(警務局)이 정식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찰 조직이 임시정부 초기부터 정식 직제로서 현존했음을 증명하는 유물입니다.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경무국의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 사람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통해 초대 경무국장으로서 경찰의 기틀을 세웠던 상황을 엿볼수 있습니다.

    “3ㆍ1운동이 일어난 뒤에 각지로부터 모여온 인사들이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을 조직하여 국내외에 선포한 것이 4월 초순이었다. … 내가 내무총장 안창호 선생에게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청원한 것이 이때였다. 나는 문지기를 청원했는데 경무국장으로 취임하게 되니, 이후 5년간 신문관, 판사, 검사의 직무와 사형집행까지 혼자 겸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경무국의 임무는 기성 국가에서 하는 보통 경찰행정이 아니요, 일본의 정탐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가가 일본에게 투항하는 것을 감시하며 일본의 마수가 어느 방면으로 들어오는가를 감시하는데 있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나는 정복과 사복의 경호원 20여 명을 썼다.”

    일본은 한국인 밀정을 고용하여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를 감시하고, 임시정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분을 위장해 잠입시키기도 했습니다. 적인지 동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밀정을 찾아내고 처단하는 일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2ㆍ8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던 소설가 이광수(李光洙, 1892~1950)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임시정부에는 ‘업무가 없어 인원이 배치되지 않은 부서도 많은 상황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배치되어 있던 곳이 내무부였고, 그중에서도 밀정을 단속하는 경무국 일밖에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경무국의 업무는 임시정부 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당시 기록물을 통해 임시정부 경찰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출처 : 독립기념관)

      (출처 : 독립기념관)

    공보는 정부의 소식을 알리는 공식적인 관보로 법률의 공포, 조약, 예산, 인사 및 기타 사항을 수록하였습니다. 1919년 발행된 임시정부 공보 제1호에는 김희준과 전재순을 경무국 경호원으로 임명한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 (출처 : 국회기록원)

    이 문서는 1944년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임시의정원에 보고한 문서입니다. 이지일을 경무과장 겸 경위대장으로, 유병무는 경위대 부대장으로 임명하고, 안봉순, 김신, 문덕흥은 경무과원으로, 박용덕, 심광식, 송수헌, 황영식은 경위대원에 임명한다는 내용입니다.



    • (출처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같은 시기 임시정부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적은 예산안에는 경위대 판공비 12,000원, 특별비로 24,000원이 편성된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임시정부 경찰이 단순히 형식상 존재했던 조직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치안 기구로서 실제 운영되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25년 상해판 독립신문에는 이러한 경무국의 활동을 기사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경무국은 민활하고 용감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 결과 최근 몇 달 거의 무정부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정치적 야심을 갖고 치안을 방해하는 자가 없었으며, 동포의 생명과 재산을 협박하던 ‘강도배’들은 무서워 머리를 감싸고 숨어 버려 그 그림자를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경무국 방문기’라는 제목의 이 기사를 통해 임시정부가 내외부적으로 위기를 겪을 때에도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임시정부를 지켜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 오늘날 경찰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 (출처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이러한 활약 그 이면에는 어두운 현실도 존재했습니다.
    김구 선생에 이어 제2대 경무국장을 역임한 김용원(金庸源, 1892~1934)에 대한 일제의 감시대상 인물카드입니다. 감시대상 인물카드는 일본이 감시대상으로 삼은 인물들의 신상 정보와 활동내용, 검거 사실 등이 기록된 카드입니다. 김용원은 1921년~1922년까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뒤 국내에 귀국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사실이 발각되어 1924년 체포되었습니다. 석방된 이후로도 같은 이유로 체포, 수감되는 일이 반복되다가 1934년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습니다.
    이 자료는 임시정부 경찰이 일본 당국의 지속적인 추적과 감시 속에서 활동해야 했던 어려운 상황을 보여줍니다. 임시정부를 지켜내는 일을 맡았지만, 동시에 자신은 언제나 체포되거나 탄압받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던 것입니다. 이는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긴장과 시련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 (출처 : 이윤정)

    1945년, 열망하던 광복을 맞이하고 임시정부 요인들도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유물은 광복 이후 경찰관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적 사고를 갖게 하고 실무능력과 교양을 배양하기 위해 발행했던 잡지 『민주경찰』입니다. 특히 1947년 특별호로 발행된 민주경찰(4호)은 백범 김구 선생이 ‘국민의 경종이 되소서’라는 휘호를 경찰에게 남겨 그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유물입니다. 임시정부 시기 경찰의 기틀을 세웠던 김구 선생이 해방된 조국에서의 경찰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 짧은 문장에 담아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국립경찰박물관은 4층 경찰역사실(상설전시)에 임시정부 경찰 유물을 새롭게 추가하여 전시했습니다. 임시정부 시기 기록물과 일제의 감시 속에서 남겨진 흔적까지, 여러 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는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교체를 통해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 임시정부 경찰의 의미,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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