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장유물

2023년 3월

병역기피자 자수 권고 홍보 유물











명칭병역기피자 자수 권고 홍보물
시기1953년 1월
내용이 유물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1월 전라북도시자, 전북지구병사구사령관, 전라북도경찰국장 명의로 배포한
병역기피자 자수권고 홍보물이다.




이번에 소개할 유물은 6·25전쟁 중인 1953년 1월에 배포된 병역기피자 자수 권고 홍보물이다. ‘징소기피자(徵召忌避者)에 고(告)함’이라고 시작하는 홍보물에는 자수 기간(1953년 1월 20일~24일)을 정하여 경찰서와 지서에 자수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생략).... 친애(親愛)하는 청장년(靑壯年)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군문(軍門)에 들어가는 것을 기피(忌避)하는 것입니까? 국가(國家)가 망(亡)하느냐 흥(興)하느냐 민족(民族)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국가초비상시(國家超非常時)에 처한 오늘날 비겁하게 남아(男兒)가 징소집(徵召集)을 기피(忌避)한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시간(時間)에도 여러분의 형제(兄弟)와 친우(親友)들이 전선(前線)에서 고귀(高貴)한 투쟁(鬪爭)을 감행(敢行)하고 있음을 상기(想起)하시는지?......(생략)....당국(當局)에서는 여러분을 위(爲)하여 자수기간(自首其間)을 설정(設定)하여 당신들의 양심적(良心的)인 반성(反省)을 촉구(促求)하는 바이니 서슴지 말고 자수(自首)하십시오. 자수(自首)하는 장정(壯丁)에 대(對)해서는 과오(過誤)를 용서하여주려니와 만일(萬一)에 끝까지 당국(當局)의 방침(方針)에 불응(不應)하는 자(者)에 대(對)해서는 하인(何人)을 불문(不問)하고 의법처단(依法處斷)할 것을 강조(强調)하여 경고(警告)하는 바입니다.’


1950년대에는 6·25전쟁이 지속되고 전투 손실 및 부대의 신·개편으로 군의 규모가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많은 신병 및 보충병이 필요하게 되었다. 『병무연보 1959』 기록에 의하면 1953년도 전국 징·소집계획은 423,302명이었으나 최종 인계된 인원은 386,083명으로 약 91%를 충원하였다. 위의 유물과 관련된 전라북도의 경우 징·소집계획은 45,007명이었으나 충원은 최종 42,235명으로 계획 대비 약 93%의 인원을 충원하였다.
병력보충은 주로 가두모집, 현지 부대장이 인근 마을에서 필요한 장정의 강제 징집, 그리고 청년방위대원이나 학도병들의 자원입대 등에 의존하고 있었다. 초기 징집기준은 소총을 어깨에 매었을 때 땅에 닿지 않을 정도의 장정이면 징집하였을 정도로 뚜렷한 기준이 없이 실시되었다. 이와 같이 전쟁 초기에는 소집 절차나 행정절차가 미비하였다. 이렇게 징·소집 된 후 전선 상황이 급할 때는 1주일 만에 전선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이후 1950년 9월 26일부터 이듬해인 1951년 4월 20일 사이에 전국 각도에 10개의 병사구사령부가 설치되어 전국 장정의 징·소집 업무를 하였다. 징병 업무는 전쟁 발발 전까지 국방부에서 담당하다가 6·25전쟁 후에는 병적정리는 내무부 지방국이 영장 집행 및 기피자 단속 등은 치안국이 담당하였다.


전쟁 발발 후 경찰관은 국민의 자위조직을 강화하기 위해서 조직된 자위대의 지휘·감독을 담당하였다.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대통령 긴급명령) 제6호, 1950년 7월 26일 공포」에 의하면 ‘징발영장 또는 징용영장은 징발목적물의 소유자 또는 피징용자의 주소를 관할하는 도지사, 시장, 경찰서장, 읍면장 및 선박회사의 장에 교부하여 이를 집행케 한다.’라는 법령이 있어 경찰도 징·소집 업무에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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