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장유물

2023년 9월

기마경찰














명칭

기마경찰







  • 사진 1. 기마경찰 사진(1950년대, 좌측 이상덕)





  • 사진 2. 양평경찰서장 재직시절(1953년 이후)





  • 사진 3. 대구기마경찰대사진(1951년)





  • 사진 4. 백희(1950년대)





  • 사진 5. 백희(1950년대)





  • 사진 6. 고사 지내는 장면(1950년대)





  • 사진 7. 고사 지내는 장면(1950년대)





  • 사진 8.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1789~1802년), 서울시립대박물관 소장





  • 사진 9. 흰소와 함께 찍은 사진





  • 사진 10. 시내 순찰 중인 기마경찰(1950년대)





  • 사진 11. 대통령 취임식 의전 장면(1952년)





  • 사진 12. 이상덕 기마대장 송별기념 사진(1953년)





  • 사진 13. 민병선 선수 연습 사진(1950년대)






이번에 소개할 유물은 기마경찰대에서 근무하던 이상덕의 유물이다. 이 유물은 2023년 이상덕의 아들이 직접 경찰박물관에 방문하여 기증하였다.(사진 1) 이상덕은 6·25전쟁 중인 1951년 대구에서 2대 경찰기마대장을 지냈으며 1953년에는 양평경찰서장으로 재직하다가 1961년 퇴직하였다.(사진 2) 이 유물(사진 3)은 1951년 이상덕이 대구에서 경찰기마대장으로 재직시 대구 잔류직원들과 찍었다고 사진 하단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경찰기마대장인 이상덕의 계급은 경감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찰은 순경과 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덕 기마대장의 말은 백마였으며 이름은 ‘백희’였다고 한다.(사진 4,5) ‘백희’는 일본 경찰이 쓰던 말이었다. 1978년 10월 21일자 경향신문에는 유일한 백마인 ‘백희’의 퇴역 기사가 있다. 퇴역 당시 백희의 나이는 15세이며 사람나이로 치면 환갑에 달했다. 경찰기마대에서는 말관리와 함께 말이 아프지 않고 무탈없이 지낼 수 있도록 고사를 지내는 의식도 중요했다. 의식을 지내는 탁자 위에는 소머리와 함께 시루떡이 올라가 있다. (사진 6,7)

기마경찰대는 1946년 2월 25일 공식 창설되었다. 경무청의 지시로 각도경찰부 공안과 소속으로 정식으로 발대시켜 기마경찰로서의 특수임무를 갖고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경찰관 100여 명이 일제강점기부터 전해진 군마 90여 필을 가지고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발족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서울시 경찰국 기마경찰대로 편제되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은 현재 이마빌딩이 들어서 있는데, 원래 이 터는 조선시대 수레, 말, 목장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터였다. 1972년 기마경찰대는 종로구 수송동에서 성동구 현재의 부지로 청사 건립과 함께 이전하였다. 뚝섬지역은 조선시대 살곶이 목장이 있었던 곳이자 국가의 말을 키우던 목장으로 조선시대부터 말과 인연이 깊은 지역이다.(사진 8)

6·25전쟁이 터지면서 급작스러운 후퇴와 함께 서울에 있던 기마경찰대는 대폭 규모가 축소되었다. 특히 한강다리의 폭파로 150여 두의 마필이 도강을 할 수 없어 뿔뿔히 흩어졌다. 이 유물은 이상덕이 6·25전쟁으로 후퇴하면서 발견한 흰소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9) 흰소는 길한징조를 상징하여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를 했다고 한다. 기마경찰대는 휴전 후 방치되었던 말과 인력자원을 수습 복원하며 활동을 재개하였다.

기마경찰 업무는 주로 군중정리, 방범·방화 순찰, 시내 교통정리, 산림보호순찰, 시위 방지, 풍기단속, 의전 등이었다. (사진 10) 경찰기마대 기동력은 당시 혼란한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경찰의 중요 기동력이었다. 이 유물(사진 11)은 대통령 취임식 관련 의장병으로 의전을 하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에는 ‘8.15광복 7주년 기념 만세’라는 조형물과 함께 거리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으며, 대통령 취임식에 동원되었던 기마경찰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대장송별기념 사진은 1953년 11월 18일에 이상덕이 기마대장 퇴임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 12) 이후 양평경찰서장으로 재직하다가 퇴직 후 감사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1950년대는 경찰기마경기대회나 마술대회도 열렸는데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54년 10월 23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경찰 창설 9주년을 맞이한 경찰당국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제1회 전국경찰기마경기대회가 서울시 경찰국 기마경찰대에서 열렸다. 그리고 1955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국립경찰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제2회 전국경찰마술대회가 서울시 경찰국 기마경찰대 마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장애물경기에서 1위는 서울기마경찰대, 2위는 전남기마경찰대, 3위는 전북기마경찰대가 수상하였다. 기증자 유물 중에는 한국인 최초 자비로 올림픽 승마대회에 나갔던 민병선이 수송동 기마경찰대 마장에서 연습하던 사진도 있다.(사진 13)

1960년대 경찰 기동 장비가 보급되고 도시교통도 복잡하게 변화하여 기마대 규모는 축소되었으며, 1975년 전국의 기마경찰대가 서울시 경찰국 기마대로 통합되었다. 1991년에는 서울시경 기마경찰관들이 뚝섬 한강시민공원에서 주말과 공휴일에 잠실·뚝섬·여의도시민공원과 근교 유원지 등을 순찰하였다.

현재 서울경찰기마대는 서울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에 소속되어 대국민 경찰 홍보 및 의전 행사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경찰기마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마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7년 보존 필요성을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오늘 소개한 유물들은 1950년대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했던 기마경찰대 건물, 기마경찰 복식, 풍속 등을 알 수 있어 매우 뜻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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