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장유물

2024년 1월

故최규식 경무관 관련 유물














명칭

故최규식 경무관 관련 유물



내용

경찰박물관에 소장된 故최규식 경무관 관련 유물입니다.









  • 故최규식 경무관 동점퍼







  • 故최규식 경무관 동점퍼 세부







  • 故최규식 경무관 동점퍼 세부







  • 故최규식 경무관 근무복 상의







  • 故최규식 경무관 근무복 하의







  • 故최규식 경무관 태극무공훈장







  • 故최규식 경무관 국립경찰장 사진(1968.1.22.)







  • 故최규식 경무관 장교신분증 앞면







  • 故최규식 경무관 장교신분증 뒷면







  • 故최규식 경무관 서울특별시민증 앞면







  • 故최규식 경무관 서울특별시민증 내부






이번에 소개할 유물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로 진입하려던 북한군 무장공비의 총에 맞아 순직한 故최규식 경무관의 근무복과 신분증이다. 경찰박물관에는 근무복과 함께 동점퍼가 소장되어 있으며 동점퍼와 근무복에는 1·21사태 당시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이 유물은 최규식 경무관의 부인이 직접 기증하였으며 1·21사태와 현대사 및 경찰사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이다. 故최규식 경무관 상의와 동점퍼는 1968년 1·21사태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대변해주듯 팔부분이 찢겨 있으며 동점퍼 어깨 한쪽 부분 계급장이 부분적으로 유실되어 있다.

1·21사태는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직속 124군부대 6기지 제1중대원 31명이 1968년 1월 17일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할 목적으로 남하하였다. 1월 18일 무장공비들은 임진강을 건너 19일 법원리 심봉산 산록에 도착하였다. 19일에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법원리 초리동에 사는 나무꾼 우씨 4형제와 만났지만 풀어주었다. 우씨형제는 파주의 천현지서에 신고하였으며 천현지서에서 파주경찰서에 보고를 하여 경찰병력과 군인이 수색을 전개하였다.

1월 20일 무장공비 침투에 따른 갑종 경계령이 종로경찰서에 전달되었다. 故최규식 경무관은 종로경찰서를 비상경계 태세로 전환시키고 타격대도 비상대기시켰다. 이미 갑종 경계령이 내려질 당시 북한산 승가사 아래에 도달해 있던 무장공비들은 1월 21일 오후 늦게 북한산 비봉 밑에서 이동하여 21일 밤 서대문서 경찰관에게 목격되었다. 하지만 CIC방첩대라며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는 무장공비들의 행동 때문에 그냥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자하문 임시검문소가 설치되어있는 청와대쪽으로 무장공비들이 방향을 돌리고 검문소 직원들이 검문을 실시하자 거부하며 대치가 벌어졌다. 故최규식 경무관은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인근까지 남하했다는 보고를 받고 즉각 현장에 달려갔다.

자하문 고개에서 무장공비를 가로막고 신분을 추궁하던 그는 대치 속에서 3발의 총탄을 맞았으나 끝까지 부하들을 지휘하여 무장공비가 청와대로 진격하는 시간을 벌었다. 故최규식 경무관은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가는 시간을 지연시킴과 동시에 청와대 기습을 좌절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추후 공적을 높이 사 경무관으로 특진하였고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경찰박물관에는 근무복 외에도 故최규식 경무관 신분증이 소장되어 있다. 장교신분증에는 故최규식 경무관 신체사항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장교신분증 뒷면에는 신장, 체중, 혈액형 등이 기록되어 있다.

故최규식 경무관의 서울특별시민증은 1964년 2월 27일에 발급된 것으로 본적, 주소, 직업, 성명 등이 적혀 있다. 1964년은 故최규식 경무관이 용산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시기로 직업란에 상업이라고 쓴 것이 이채롭다. 故최규식 경무관 서울특별시민증 주소에 의하면 1964년에 주거하던 집의 위치는 효창공원앞역 용산 용문시장 근처이다.

위에 소개된 故최규식 경무관 유물은 국가의 이데올로기 갈등 아래 희생된 국민이자 사명감을 가진 경찰의 희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서 의의가 크다.


목록으로